제목: 감시카메라 피하려고 쓴 방법이?
야 이거 좀 웃기고 쪽팔린 얘기 하나 풀어볼게.
작년 연말 쯤, 정확히는 크리스마스 이브였나. 아파트 주차장에서 택배 박스를 하나 주웠어. 뭐 내용물이 궁금했다 이건 아닌데, 그 박스가 되게 묵직했거든. 그냥 누가 버린 건가 싶어서 들고 집 근처까지 오기는 했지. 근데 갈수록 찝찝한 거야. 어라, 이거 혹시 누가 분실한 택배 아냐? 아파트 게시판 봤는데 누가 자기 배송 안 받은 박스 찾는다는 글이 있는 거야. 하필 내가 들고 온 시간대랑 비슷해.
이거 큰일 났다 싶어서 다시 박스를 돌려놓으려고 아파트 내려가는데, 엘리베이터 CCTV 생각이 나더라. 나 혼자 박스 들고 탄 게 찍힌 거지. 그리고 돌아가놓는다 한들 이미 찍혔으니까, 괜히 더 의심받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든 거야. 순간 별 이상한 생각이 다 드는 거 있지.
그래서 무슨 짓을 했냐면… 입에 마스크 쓰고, 벙거지 눌러쓰고, 후드 눌러쓰고, 마치 범죄자처럼 위장하고 내려감. 진짜 누가 내 모습 봤음 112 신고감이었을 듯. 시간대 맞춰 CCTV 없는 구석으로 가서 박스 다시 놓고 왔지. 그때 어둠 속에서 고양이 울다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진짜 심장 멈추는 줄 알았고.
다시 올라오는데 심장이 벌렁벌렁하더라. 막 숨을 헐떡였는데 마침 101동 사는 이웃분이랑 딱 마주침. 날 보더니 인사도 안 하고 슬쩍 피해가시는데, 그날 이후로 그분이 나를 좀 경계하는 느낌임.
결국 며칠 뒤 아파트 단톡방에 “박스 다시 찾아주신 분 감사합니다” 글이 올라와서 겨우 안도했는데, 내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아직도 가끔 생각나. 사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당당하게 관리실에 가져다 주면 될 걸, 왜 그리 어리석게 굴었는지.
괜히 ‘착한 짓 하는 척하는 도둑’처럼 돼버린 경험이랄까. 그 이후로는 괜히 남의 물건 멋대로 손 안 댄다. 진짜 오해받기 딱 좋아. 남의 시선이란 게, CCTV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더라.